뼈 혹은 얼음 김 종 제 한 세상의 들판에 가을걷이 잘 하고 마른 짚더미에 불을 질렀더니 그 속에 뼈만 남았다 열매 다 먹고 뱉었더니 씨 같은 당신 하나만 남았다 햇볕에 녹지도 않는 얼음 덩어리였다 부러뜨릴 수도 없이 단단한 가시 투성이었다 목에 걸린 것이 날카로운 뼈 같은 세월이었다 발에 밟힌 것이 빙판의 얼음 같은 시절이었다 한 동안 당신이 건네준 손도 당신의 전해준 말도 뼈거나 얼음이었다 가슴속에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멋도 모르고 꺼내들고 이리 저리 사방으로 휘둘러댔다 잘 익은 과일처럼 살갗에서 단풍 터지더니 허물 같은 낙엽 벗겨지더니 뼈가 드러났다 눈 내리고 얼음 얼었다 한 세상이 고스라니 옷 찢겨졌다 내가 들어가 누울 자리가 빙하氷河같이 깊고 아득했다
출처 : 뼈 혹은 얼음
글쓴이 : 구석기 원글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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